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방인(소설)/번역 논란 (문단 편집) === 위기 === 이 와중에 번역자 이정서가 그 논란의 「이방인」을 출판한 새움출판사의 대표인 '이대식'이라는 주장이 나왔고,[* 한림대 연구교수이자 인터넷 서평가인 [[로쟈]](이현우)가 제기했다. 한겨레 기사[[http://www.hani.co.kr/arti/culture/book/632652.html|#]] 참고] 이정서는 다른 글을 통해 이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, '이미 (이정서가 이대식이라는 게) 알음알음 알려진 것 같기에 굳이 밝히지 않았다'고 해명했다.[* 필명을 쓴 게 잘못이 되지는 않는다. 후술하겠지만 그냥 번역 자체에 문제가 많았다.] 이정서/이대식은, "[[서울대]] 김윤식 교수의 저서 중 일부분은 가라타니 고진이 쓴 『근대문학의 종언』의 [[표절]]"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가 교수 사회에서 반쯤 매장되었던 [[경희대학교]] 이명원 교수를 다룬 소설 『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』를 쓰기도 했다.[* 애초에 둘은 [[서울시립대학교]] 선후배 사이이다. 이정서가 84학번, 이명원이 90학번.] 이정서/이대식은 이번에 자신이 엮인 번역 논쟁 역시, 김윤식 대 이명원 논쟁과 마찬가지로 '25년 문단 권력의 바른 소리 죽이기', 혹은 '문학 권력(수구 세력)에 고용된 [[알바]]들의 공격'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다분했다. 이어 [[로쟈]]가 이정서가 [[영어]]판을 [[중역]]했다고 주장하여 다시 논란이 되었다. 이에 이정서는 "자신은 불어 전공자가 아니다"라며, "비록 프랑스어 회화는 못하지만 읽을 줄은 안다. 이 때문에 사람들이 다들 나를 신기하게 생각한다"고 블로그에 해명(?)했다. "사전 잘 찾는 법만은 자신 있게 가르쳐 줄 수 있다"는 드립은 덤.[* 물론 말하기 실력과 읽기 실력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자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. 심지어 비록 극단적인 경우이지만, 외국어 글을 읽고 모국어로 옮기는 일은 가능한데 어떻게 소리 내어 읽는지는 전혀 모르는 경우도 불가능하지는 않다. 일본의 언어학자 지노 에이이치의 저서 『외국어 잘 하는 법』을 보면, 체코 엔지니어가 일본어로 적힌 기술 서적을 읽어야 하는데, 자기는 일본어 회화 실력은 필요 없고 오직 해독만 하면 되니 체코어로 해석만 할 수 있게 가르쳐 달라고 지노 에이이치에게 부탁하는 일화가 나온다. 얼마 후 체코인은 일본어로 적힌 글을 소리 내어 읽는 방법은 전혀 모르면서도 의미 자체는 체코어로 아주 잘 옮길 수 있게 되었다고. 물론 이 사례가 이정서를 옹호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. 학습자가 대단히 독특한 목적을 지니고 교수자에게 그에 맞는 교수법을 따로 부탁한 경우이기 때문. 이정서가 프랑스어 교수자에게 '나는 번역에만 관심이 있으니 읽고 옮길 수 있게만 가르쳐 달라'고 부탁한 게 아닌 이상, 일반적인 외국어 학습 과정에서는 어떻게든 읽는 법은 배우게 된다. 만약 이정서가 이런 방식을 따로 요구해서 프랑스어를 익혔다면, 그의 성격상 진작에 프랑스어 교수자를 소개하며 자기를 정당화했을 것이다.][* 불어 '[[http://frdic.naver.com/fkEntry.nhn?entryNO=60472&query=sac|sac(자루, 가방, 핸드백)]]'을 '지갑'으로 옮긴 걸 보면 영어판을 참고한 게 맞는 것 같다. Matthew Ward의 영어판에 해당 표현이 'purse'로 되어 있기 때문. 그러나 'purse'는 미국식 영어 용법으로는 마찬가지로 '[[http://endic.naver.com/enkrEntry.nhn?sLn=kr&entryId=a9f5ec9d1bf8455d95bff1fa46ac8dcb&query=purse|핸드백]]'이며, Matthew Ward는 미국인이다(…). 영국인 Stuart Gilbert는 'sac'을 'bag'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상황 끝. 결국 카뮈가 쓴 본래 불어 단어('sac')는 물론이고 미국식 영어 표현('purse')이든 영국식 영어 표현('bag')이든 지시 대상은 그냥 '핸드백'임이 명백한데도 이정서가 착각한 것. 이정서는 한불사전이 아니라 영어사전도 제대로 못 찾아서 미국식 표현을 영국식 의미로 옮겼나 보다. [[http://indindi.egloos.com/9166544|출처]]] 아무튼 이처럼 화제가 되고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, 새 번역은 대형 서점에서 눈에 띄는 곳에 전시되고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들었다. 실제 의도를 떠나서, 도발적인 카피를 내세우고 번역 논란을 일으켰던 게 일종의 [[노이즈 마케팅]]이었다면 대성공이었던 셈. 논쟁 중에 번역자 이정서는 절대번역론을 주장함으로써 [[트위터]]에 상주중인 일선 번역가들에게 폭풍처럼 까였다. '번역에는 원작자의 의도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'는 말도 나오는 마당인데, 이정서의 주장처럼 '외국어를 무오하게 옮길 수 있다'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에러라는 것. 역자 본인은 스스로에게 카뮈가 접신(…)하였기에 세계의 그 어느 번역본보다도 카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다고 주장했는데, 각자 알아서 판단해 보자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